일본의 민주주의 실험<5> : 이 웬수(?)같은 쌀 └옆집 들여다보는 시간

일본의 적백 내전 간섭 결정은 중국에 대한 21개조 요구 못지않게 앞으로의 일본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 결정이었습니다. 그나마 위안 스카이 사후 봉천파나 안휘파 등과의 커넥션을 통해 나름대로 뭔가를 챙길 수 있었던 - 그게 독사과였다는 건 제쳐놓고 - 21개조 때와는 달리 이 때의 일본은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애궂은 병사들 목숨만 잃었고, 서방 국가들의 경계심을 다시 한 번 들쑤셨으며, 여기에 덤으로 새로 성립한 소련과의 좋지 못한 관계까지 안고 가게 되었죠.

여기에 데라우치 마사타케 입장에서 봤을 때 더욱 안 좋은 일이 하나 남아있었습니다. 일명 쌀 소동이죠.

사실 일본 정권과 쌀과의 악연은 꽤 오래전까지 올라갑니다. 애초에 정치라는 게 먹는 문제 또는 돈 문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쌀은 옛날부터 먹는 것이자 돈이기도 했으니까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쌀 소동은 유난히 기시감이 있습니다. 특히 에도 시대와 함께 놓고 봤을 때 말이죠.

에도 시대때 막번의 위정자들과 서민들을 골머리썩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쌀 문제였습니다. 막번의 과도한 미곡 수취와 상업 경제의 발달로 인해 논이 상품 작물 재배지로 바뀌어가고, 여기에 막번과 결탁한 미곡상들의 농간이 이어지고, 상업 경제의 발달과 도시화의 진행 하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던 막부 정책의 미숙함까지 더해진 결과였죠. 에도 시대 도시민들이 일으켰던 소요의 원인이 거의 이 쌀 문제였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이런 현실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더 악화되었죠. 급진적이다 못해 과격하기까지 한 공업화는 환경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방향에서 농촌의 분해를 촉진시켰지요. 에도 시대에 어느 정도 이루어졌던 도시화는 더욱 급격히 진행되었고요. 이는 생산자의 수는 줄어드는데 소비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언젠가 쌀 문제가 터지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데라우치 내각에서 시작한 시베리아 출병 계획은 곡물 수요를 크게 늘렸습니다. 시베리아로 가게 될 병사들을 먹여 살릴 군량미가 필요했던 거죠. 대량의 수요가 발생할 거라는 걸 직감한 미곡상들은 곡물 매점 매석에 들어갔습니다. 이익을 볼 수 있을 때 확실히 이익을 보려는 상인의 본능이, 에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든 것이었죠. 하지만 상황이 달랐습니다. 민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부글부글거리던 시점에서 이런 정부와 미곡상의 행태는 심지에 불을 당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도야마 현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미곡상을 습격하고 파출소를 부수는 움직임이 줄을 이었습니다. 조선에서 무단정치로 나름 재미를 보았던 데라우치는 강경 진압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정치적 신임도는 이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황이었죠. 결국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사망하지요.

지금까지 정치판을 장악하고 있던 번벌정치가들, 특히 조슈 번벌의 우두머리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비야 사건 이래로 늘 걱정해왔던 제 2의 히비야가 결국 일어나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이제 국민의 요구, 그리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지닌 정당정치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서는 정국 안정을 꾀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해졌습니다. 정당정치에 지독히 치를 떨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도 이제는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찾아갑니다. 그의 이름은 하라 타카시, 사실상 일본 최초의 정당 내각을 성립시킨 남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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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미루다 보니 상당히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인 것 치고는 내용이 영 부실한 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OTL
아무튼 다음 파트부터는 본격적인 다이쇼 시대 개막이네요. 드디어 본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적극적인 빽태클을 바라며, 모두들 내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사람, 그리고 덜 된 사람의 편지 살아가고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가 서재에 들어가, 문지방에서 진흙과 먼지로 더러워진 작업복을 벗고 궁정 예복을 입지. 적절한 복장을 갖추고 나서 고대인들의 유서깊은 궁정으로 발을 들여놓은 다음, 고대인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고서, 오직 나를 위한 양식이자 내 삶의 목적인 양식을 섭취하는 것이지. 거기서 내가 스스럼없이 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친절하게도 내게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네 시간 동안은 지루함도 느끼지 않고, 시름도 잊어버리고, 가난도 걱정 않고, 죽음도 두렵지 않아. 완전히 거기에 몰압하는 것이지.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저자



밤이 되면 잔다네.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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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된장.

전쟁이 터질까나 살아가고

요즘 들어서 이래저래 큰 일이 있었다 보니 주변이 좀 시끄럽습니다. 생전 뉴스 이야기 안 하시던 어머니께서도 뉴스를, 그것도 아예 채널에서 지워버렸던 YTN 뉴스를 보면서 북한X 욕을 하실 정도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입과 입으로 주고받을 사람이 주위에 하나도 없다 보니 아무 말 안 하고 살긴 하지만 저라고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과연 전쟁이 일어날까요, 라는 질문에 예전에는 X소리라고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나라에서도 '반쯤' 내다버린 병신이기는 합니다만 아마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이 새파란 사람이 무사하기는 힘들겠지요. 경험해 보지도 않았고, 경험해 보지도 않았으니만큼 그 정도 생각밖에 안 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 다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전력 차이가 너무나도 확연한데 세상에 어떤 또라이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니...... 있더군요, 그런 또라이.

참모총장 : 님 기름 업ㅂ음 지금 전쟁 안 치면 털림.
덴노 : 그럼 싸우면 이김?
연합함대사령관 : 1년 싸우고 그 다음은 털림.
덴노 : ㅅㅂ하건 말건 맘대로 해

1941년에 이런 또라이가 있었는데, 2010년에 이런 또라이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대장 : 님 식량 업ㅂ음 지금 전쟁 안 치면 털림.
축지법 쓰시는 장군님 : ㅇㅋ ㄱㄱㅅ

이런 또라이 짓을 하기만 하면 전쟁이 나기는 나는 거지요. 우리가 아무리 전쟁 안 한다고 해도 저쪽에서 전쟁을 걸어온다면야 우리라고 어쩌겠습니까. 칼 들이대는 데 고자킥이라도 날려야죠. 그런 상황이라면, 오라면 가야겠고 싸우라면 싸워야겠죠. 다만 그래도 괴롭기는 괴로울 겁니다.

일본 >>>>>> 북한

이기는 합니다만,

미국>>>>>>>>>>>>>>>>>>>>>>>>>>>>>>>>>>>>>>>>>>>>>>>>>>>>>>>>>>>>>>우리나라

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즈벨트와 그 막료 장성>>>>>>(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넘사벽)>>>>>>>>이모씨와 그 막료 장성

이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들 스스로가 전쟁 분위기를 고취하고, 전쟁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건 결사 반대입니다. 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느긋하게 살아서 자서전도 쓰고 싶고 그렇거든요. 사흘도 못 참습니다. 군사적인 준비라면 모르겠지만, 정신무장 따위 시덥잖은 걸 요구하는 건 정말 혐오합니다. 다른 속셈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요.

어느 때는 안 그랬냐 싶지마는 부디 아무 일 없기, 어떤 식으로건 상처 입히거나 상처 입는 일이 없길 바라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들이 단절감을 느껴야만 하는 이유 └깔밋 끌밋하게 글질

"각각의 작품이 나름의 개성을 갖추고 있기는 해도, 독자들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자체적으로 완성도를 높이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중략)요즘 우리 문학이 지나치게 젊어지고 있어서, 각 세대를 이어주는 문학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다는 우려와 비판의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제 8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발표에서(심사위원 박범신, 오정희, 조남현, 최원식, 최수철)

"일상적인 삶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소설의 상상력의 한계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해 주었다."
- 제 34회 이상문학상 선정 경위와 총평(심사위원 김윤식, 권영민, 윤후명, 신경숙, 권지예)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이래 소위 그 근대문학이란 자리에서는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여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도들을 어느 정도는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장들 중의 하나가 바로 '문학상 선집'이겠죠. 다양한 실험이 있을 수 있는 단편 중심이라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고 말이죠.

그런데 며칠 전, 이삿짐을 싸면서 예전에 샀던 책들을 쭉 읽어 보다가 묘한 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위에 인용한 부분들이지요. 심사평이나 평론 같은 것을 읽는 게 소설 감상 - 처음 읽을 때 - 을 방해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넘겨버렸던 게, 그 다음에 읽어볼 때에도 아무 생각 없었던 게 이날 따라 눈에 보였던 겁니다.

제 8회, 그러니까 2008년 황순원 문학상 출품작에는 신선한 - 이 동네 기준으로 -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무협소설을 전격적으로 패러디한 것도 있었고, 오에가키로 탄생한 늑대가 좀비 영화의 한 장면 속에서 질주하는 것도 있었으며, 클래식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얽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설들 중심이었던 게 심사위원들에게는 소위 '단절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봐 왔고 또 권장했던 것과 영 뭔가 다른 기분이었던 겁니다.

그에 비해 32회, 2010년도 이상문학상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추상성을 띤 것들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거나 관념적이었다기보다는 어디의 누구에게 붙여도 대충 있을 법한 이야기였지요. 그 있을 법한 이야기를 심리적으로 파고 들어간 스타일이 주였습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거기에는 절박함도 흥미로움도 생각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간단히, 그리고 조금 폭력적으로 말해 재미가 없었다는 소리죠. 아마 심사위원들이 불만을 느낀 것도 그 부분이었을 겁니다.

'지금 여기'는 언제나 우리 근대 문학의 중요 지점이자 소재였습니다. 모더니즘적인 탈출은 기법에 그쳤지요. '지금 여기'에 맞서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고, 독자들은 '지금 여기'가 언제 어느 때인지를 궁금해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독자들 모두가 각자의 '지금'과 '여기'를 가지게 된 겁니다. 작가가 독자들의 '지금 여기'를 어디에나 있을 법하게 제시한다면 독자들은 절박함도 흥미로움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기까지 하다면 짜증마저 낼 겁니다.

'단절감'을 느낄 법한 색다른 이야기들은 여기에 대한 어떠한 도전이 될 수가 있습니다. 독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지금 여기'가 아니기에 나름대로의 관심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의 절박함이나 색다른 시공에 대한 생각의 여지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그 색다른 세계에서 독자 스스로의 '지금 여기'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성공일 테고 말이죠. '혼자 밥 먹기 학원'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혼자 밥 먹기 학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듯이 말이죠.

문제는 그 색다른 이야기에서조차 작가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근대 문학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러했던 것과 같이, 그 색다른 이야기들의 한 가운데에는 신경쇄약에 걸린 지식인이 존재합니다. 그랬기에 오에가키로 탄생한 늑대는 - 평론대로 하면 - 터무니없는 결론을 내는 도구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화자이거나, 1인칭 주인공이거나, 관찰의 대상으로서의 작가가 포주로, 변호사로, 주부로 껍질만 바꿔 낀 꼴이죠. 이런 마당에서의 색다른 이야기란 지루하고 너저분한 아나토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말이 결코 작가에 대한 찬상(讚上)의 말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아침의 문>에서는 작중 인물도 사건도 추상화되었다는 사실. 이는 그만큼 박씨의 스타일이 일정한 형태로 순화되었음을 가리킴이다. 이런 현상은 박씨 스타일의 형식화의 일정한 완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 김윤식, 제 34회 이상문학상 심사평에서

새로운 형태의 세계관을 구성해 보고, 색다른 가정을 세워보는 것 또한 작가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때 작가는 절대 세계의 중심에 서 있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세계의 중심에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것은 창조주의 의사에 달려있지만, 그걸 겪고 맞서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누군가지요. 독자가 여행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이 또한 창조주가 아닌 그 누군가지요. 아니면 창조주조차도 누군지 모르는 다른 누구일지도 모르고요.

자의식을 바탕으로 성립한 근대문학이기 때문에 작가를 중심에 두고 써 내려가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굴복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차라리 다른 세계를 찾아가는 것으로 여겨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근대문학이란 게 옛날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전통과의 연계성을 따져야 하는 게 문학상이라면 양판소 한 편 정도는 문학상 후보에 올라왔어야 할 겁니다. 퀄리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유충렬전이 퀄리티가 높아서 수능에도 나오고 그러는 건 아니잖습니까.

쇠락을 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멸망을 생각해보는 것도 - 그 속에서 스스로가 살아 남을지는 별개지만 -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멸망이란 라그나로크와 같아서 멸망 후에 발두르의 세계가 있지만, 쇠락은 침륜과 질식이 한동안 이어질 거란 의미니까요. 근대문학에는 종언이 있을지라도 이야기에는 종언이 있을 수 없음을 생각하고 '즐겁게 세계 멸망을 선언해 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일본의 민주주의 실험<4> : 일본 외교상 희대의 삽질 └옆집 들여다보는 시간

일본의 민주주의 실험<1> : 시작에 부쳐
일본의 민주주의 실험<2> : 문명의 사다리, 그리고 히비야
일본의 민주주의 실험<3> : 정변과 호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동맹을 명분삼아 독일과의 전쟁에 나섰습니다. 목표는 독일이 중국과 태평양 지역에 보유하고 있던 이권이었죠. 독일 함대를 격파하고 남양군도를 접수하였으며, 맥주로 유명한 산둥반도의 칭다오를 '중국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점령했습니다. 이 정도면 얻을 건 다 얻은 셈이었죠. 그러나 오쿠마 내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외상 가토 다카아키(오쿠마 시게노부의 친척이자 이후 총리를 역임하기도 합니다.)와 더불어 중국의 위안 스카이에게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그것이 일명 '21개조 요구'죠.

  • <제1호 산둥 권익(山東權益)>
  1. 제1조 중국 정부는 독일군이 산둥성에 관한 조약 또는 기타 에 의하여 중국에 대하여 소유하는 일체의 권리·이익·양여 등의 처분에 대하여 일본국 정부가 독일국 정부와 협의할 일체의 사항을 승인할 것을 약정한다.
  2. 제2조 중국 정부는 산둥성 내 또는 그 연해 일대의 토지 또 는 도서를 어떠한 명목으로도 타국에 양여하거나 대여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정한다.
  3. 제3조 중국 정부는 지부 또는 용구와 교주만으로 부터 제남에 이르는 철도와 연결하는 철도의 부설을 일본국에 윤허한다.
  4. 제4조 중국 정부는 가급적 빨리 외국인의 거주 및 무역을 위 하여 자진해서 산둥성에 있어서의 주요 도시를 개항할 것을 약속한다. 그 지점은 별도로 협정한다.
  • <제2호 남만주(南滿州)·동부 내몽고(東部內蒙古)에 있어서의 일본 국의 우선권>
  1. 제1조 두 체약국은 여순(旅順)·대련(大連) 조차 기한 및 남 만주 및 안봉(安奉) 양 철도의 기한도 다시 99개년씩 연장할 것을 약정한다.
  2. 제2조 일본국 국민은 남만주 및 동부 내몽고에서 각종 상공 업 건물의 건설 및 경작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토지의 임차권 또는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3. 제3조 일본국 국민은 남만주 및 동부 내몽고에서 자유로이 거주 왕래하여 각종 상공업 및 기타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4. 제4조 중국 정부는 남만주 및 동부 내몽고에 있어서의 광산의 채굴권을 일본 국민에게 허여(許與)한다. 그 채굴할 광산은 별도로 협정한다.
  5. 제5조 중국 정부는 하기 사항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의 동의를 거칠 것을 승낙한다. 1.남만주 및 동부 내몽고에서 타국인에게 철도 부설권을 부여하거나 또는 철도 부설을 위하여 타국인으로부터 자금의 공급을 받는 일. 2.남만주 및 동부 내몽고에 있어서의 제세를 담보로 하여 타국으로부터 차관을 얻는 일.
  6. 제6조 중국 정부는 남만주 및 동부 내몽고에 있어서의 정치 재정 군사에 관하여 고문 교관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반드시 먼저 일본국과 협의할 것.
  7. 제7조 중국 정부는 본 계약 체결일로부터 99개년간 일본에게 길장철도(吉長鐵道)의 관리 경영을 위임한다.
  • <제3호 "한야평공사(漢冶萍公司)"의 합판(合辦)>
  1. 제1조 양 체약국은 장래 적당한 시기에 한야평 공사를 양국의 합판으로 할 것과 중국 정부는 일본국 정부의 동의 없이 동 공사에 속하는 일체의 권리와 재산을 스스로 처분하거나 또는 동 공사가 처분하지 아니하겠다는 것 을 약정한다.
  2. 제2조 일본국 자본가측 채권 보호의 필요상 중국 정부는 한야평 공사에 속하는 광산 부근에 있어서의 광산에 대하여는 동  공사의 승인없이는 그것의 채굴을 동 공사 이외에 허가하겠다는 것과 기타 직접으로나 간접으로 동 공사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조치를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먼저 동 공사의 동의를 얻을 것을 약정 한다.
  • <제4호 영토불할양(領土不割讓)>
  1. 중국 정부는 중국 연안의 항만 및 도시를 타국에게 양여하거나 대여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
  • <제5호 희망조항(希望條項)>
  1. 중앙 정부에 정치 재정 및 군사 고문으로 유력한 일본인을 초빙할 것.
  2. 중국 내지에 있어서의 일본의 병원 및 학교에 대하여는 토지 소유를 인정할 것.
  3. 종래에 중·일간에 경찰 사고의 발생이 많았으며 불쾌한 논쟁이 적지 않았으므로 차제에 필요한 지방에 있어서의 경찰을 중·일 합동으로 하든가 또는 이러한 지방에 있어서의 경찰 관청에 일본인을 초빙하고 또 중국 경찰 기관의 쇄신 확립을 도모하는 데에 힘쓸 것.
  4. 일본으로부터 일정량의 병기 공급을 받든가 또는 중국에 중 일 합판의 병기창을 설립하고 일본으로부터 기사와 재료의 공급을 받을 것.
  5. 일본국 자본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남창(南昌) 구강(九江) 철도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또 남부 중국 철도 문 제에 관한 오랜 교섭에 의거 무창(武昌) 구강 남창선을 연결하는 철도 및 남창 항주(杭州)간과 남창 조주(潮州) 간의 철도 부설권을 일본국에게 허락한다.
  6. 대만과의 관계 및 복건 불할양 약정과의 관계에서 복건성에 있어서의 철도 광산 항만의 설비(조선소 포함)에 관하여 외국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먼저 일본국과 협의할 것.
  7. 중국에 있어서의 일본인의 포교권을 인정할 것.
출처 : 위키피디아


아주 노골적인지라 읽어보기만 해도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굳이 요약을 하자면 "중국 넌 내 꺼야!"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기존에 보유했던 이권을 재확인받거나 새로 독일로부터 확보한 이권을 인정 받아내는 정도가 아니었던 거죠. 이런 걸 무려 최후통첩으로 보냈다는 건 사실상 항복 요구나 진배없었습니다. 하지만 위안 스카이는 몇 차례의 교섭 후 5월 9일, 일본의 요구를 대체적으로 수용했지요. 그야말로 일본 외교의 값진 결실‥‥

따위는 절대로 아니고 희대의 삽질이었습니다. 공은 공대로 들이고 욕은 욕대로 먹었으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점으로 봐도 삽질이고, 이 짓 때문에 생긴 구덩이에 머지않아 직접 뛰어들게 된다는 점으로 봐도 삽질입니다. 물만 셀프가 아니고 무덤도 셀프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례라고나 할까요.

일단 첫 번째 문제는 이 조약을 받아들인 위안 스카이였습니다. 각지의 군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나가는 상황에서 자기 휘하의 북양 군벌조차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데다 민심까지도 얻지 못한 위안 스카이에겐 세력으로도 명분으로도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이런 위안 스카이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해서 중국인들이나 해외 국가들이 납득해 줄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위안 스카이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취약한 권력 기반을 강화해 볼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될 리가 없었죠. 후한 말 성씨 똑같은 꿀물 마니아같이 황제 즉위라는 생쇼를 벌인 끝에 이듬해 6월,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중국을 노리는 열강이 다수 존재하고 있단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열강이 1차 세계대전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중국에서 이권을 추가로 확보하려는 발상 자체는 그냥저냥이었지만, 통으로 먹으려 드는 건 이야기가 다르죠. 소위 선점권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도 명확하게 장악했을 때의 일입니다. 결국 열강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했지요. 어떤 면에서는 이후 계속되는 외교 마찰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인들의 반일 정서를 극도로 자극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민족주의가 응집되고 또 터져나온 이 때에 말이죠. 일본이 중국에 영향권을 넓혀나가려 한다면 언젠가는 맞부딪쳐야 할 문제였기는 합니다. 허나 일본의 세력이 중국 곳곳에 침투하지도, 일본의 국력이 중국을 압도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반일 정서를 자극한 건 모로봐도 명백한 실수였지요.

지식인을 넘어 민중들에게까지 일본에 대한 반감이 퍼져나갔고,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일명 5.4운동은 이런 배경하의 사건이었지요. 특히나 21개조 요구가 위안 스카이에게 이루어졌다는 건 위안 스카이와 대립하던 쑨원의 국민당과는 사실상 척을 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21개조로 인한 민족주의의 고조는 국민당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국민당 세력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한마디로 적을 키워준 겁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조장한 이래 일본 국제 전략의 바탕으로 자리잡은 소위 '주권선-이익선론'입니다. 자국의 통치권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역을 주권선으로, 자국의 결정적 이해관계가 걸린 영역을 이익선으로 두고 이익선을 방어함으로써 주권선을 방어해낸다는 개념이지요. 예컨대 1905년 이전 일본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 열도가 주권선에, 조선과 남만주는 이익선에 들어간다고 하겠습니다.

1910년 조선을 강점하게 되자 자연스레 조선은 주권선 안으로 끌려들어가게 되었고, 이익선은 북중국 일대로 확대되었습니다. 21개조 요구는 어떤 면에서는 이익선의 안정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앞서 말한 여러 문제, 특히 그 중에서도 세 번째 문제 때문에 그 이익선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반일 감정은 중국을 일본의 상품을 파는 시장으로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민족주의의 고조는 국민당의 북벌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주권선-이익선론'을 방침으로 내세우고 있던 일본 정부, 그리고 쓰루미 슌스케가 말한 바 '쇄국성' - 도망칠 곳이 없다는 생각 - 을 지닌 국민들을 자극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방어한다는 마인드로 침략을 벌이는 기묘한 상황을 낳게 된 겁니다.

이 기묘함이 외교 방면에서는 꼬라박 외교의 형태로, 군사적으로는 침략 내지 전쟁의 형태로, 국내적으로는 '폐색'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셋이 일본을 파멸로 몰아간 원인이 된다고 할 때, 21개조 요구는 사실상 일본 파멸의 첫 단추였다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닐 겁니다. 당시의 일본 정부야 위안 스카이 사후 가라져 나온 돤치루이나 장쭤린 등과 관계를 맺어 이권을 확대한 걸로 만족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거나 이 21개조 요구를 최후 통첩 형식으로 보낸 것 때문에 오쿠마 내각은 많은 비난을 받았고, 여기에 내무상 오우라 마사타케의 독직 사건이 터지면서 오쿠마 내각은 무너지고, 대신 육군 출신이자 조선 총독을 역임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또한 오쿠마가 파낸 한 삽이 부러웠는지 크나큰 삽질을 저지르게 됩니다. 바로 적백 내전 간섭, 곧 시베리아 출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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