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데라우치 마사타케 입장에서 봤을 때 더욱 안 좋은 일이 하나 남아있었습니다. 일명 쌀 소동이죠.
사실 일본 정권과 쌀과의 악연은 꽤 오래전까지 올라갑니다. 애초에 정치라는 게 먹는 문제 또는 돈 문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쌀은 옛날부터 먹는 것이자 돈이기도 했으니까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쌀 소동은 유난히 기시감이 있습니다. 특히 에도 시대와 함께 놓고 봤을 때 말이죠.
에도 시대때 막번의 위정자들과 서민들을 골머리썩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쌀 문제였습니다. 막번의 과도한 미곡 수취와 상업 경제의 발달로 인해 논이 상품 작물 재배지로 바뀌어가고, 여기에 막번과 결탁한 미곡상들의 농간이 이어지고, 상업 경제의 발달과 도시화의 진행 하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던 막부 정책의 미숙함까지 더해진 결과였죠. 에도 시대 도시민들이 일으켰던 소요의 원인이 거의 이 쌀 문제였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이런 현실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더 악화되었죠. 급진적이다 못해 과격하기까지 한 공업화는 환경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방향에서 농촌의 분해를 촉진시켰지요. 에도 시대에 어느 정도 이루어졌던 도시화는 더욱 급격히 진행되었고요. 이는 생산자의 수는 줄어드는데 소비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언젠가 쌀 문제가 터지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데라우치 내각에서 시작한 시베리아 출병 계획은 곡물 수요를 크게 늘렸습니다. 시베리아로 가게 될 병사들을 먹여 살릴 군량미가 필요했던 거죠. 대량의 수요가 발생할 거라는 걸 직감한 미곡상들은 곡물 매점 매석에 들어갔습니다. 이익을 볼 수 있을 때 확실히 이익을 보려는 상인의 본능이, 에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든 것이었죠. 하지만 상황이 달랐습니다. 민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부글부글거리던 시점에서 이런 정부와 미곡상의 행태는 심지에 불을 당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도야마 현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미곡상을 습격하고 파출소를 부수는 움직임이 줄을 이었습니다. 조선에서 무단정치로 나름 재미를 보았던 데라우치는 강경 진압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정치적 신임도는 이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황이었죠. 결국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사망하지요.
지금까지 정치판을 장악하고 있던 번벌정치가들, 특히 조슈 번벌의 우두머리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비야 사건 이래로 늘 걱정해왔던 제 2의 히비야가 결국 일어나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이제 국민의 요구, 그리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지닌 정당정치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서는 정국 안정을 꾀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해졌습니다. 정당정치에 지독히 치를 떨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도 이제는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찾아갑니다. 그의 이름은 하라 타카시, 사실상 일본 최초의 정당 내각을 성립시킨 남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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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미루다 보니 상당히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인 것 치고는 내용이 영 부실한 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OTL
아무튼 다음 파트부터는 본격적인 다이쇼 시대 개막이네요. 드디어 본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적극적인 빽태클을 바라며, 모두들 내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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