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3일
일본사 속에서의 메이지유신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나 현재의 사건이나 변화 등의 원인이 단순히 당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지역감정 문제를 살피기 위해선 지역감정이 존재하는 현재만 살펴봐야 될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지역차별 문제, 나아가서는 삼국통일 이후까지 살펴보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가끔씩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과거나 현재의 특정한 사건 등을 과거의 맥락과 관련 없는 파천황적인 것으로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일본 근대화의 시작이라 이야기되는 메이지 유신이 그 중 하나이다.

  역사, 그 중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의 아시아 ․ 아프리카의 역사를 근대화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메이지 유신은 서구세력의 갑작스러운 진입에 대해 일본의 선구적인 지식인들이 적극적인 개화를 통해 대응하여, 일본의 전통적인 요소를 몰아내는 적극적인 개화정책을 추진함으로서, 일본이 아시아 ․ 아프리카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현 국정 역사교과서에서도 메이지 유신을 이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하여, 중국 양무운동에서 내세웠다는 ‘중체서용’과 대비되는 ‘문명개화’를 메이지 유신,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만들어낸 일본의 핵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은 결코 일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바꿔놓았던 것도 아니며, 일본의 역사 맥락을 뒤집어엎는 파천황적인 사건도 아니다. 메이지 유신이 일본에 소위 말하는 근대적인 요소를 일부 이식하는 데 성공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기가 된다곤 말할 수 있겠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지극히 일본적인 사건일 뿐이다.

  우선 일본이 서양세력과 교류해왔던 것은 상당히 오래 전, 16세기 초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가 오닌의 난을 기점으로 완전히 쇠퇴, 각지에 다이묘들이 할거하는 전국시대를 맞이하였다.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자신의 세력을 떨치기 위해 돈과 무기가 필요했던 다이묘들은 선교사나 상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무역에 힘썼으며, 다이묘들이 직접 무역선단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 파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일본판 대항해시대라 부르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천주교가 규슈 일대에 널리 퍼지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난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후대의 에도 막부는 해외와의 교류를 금지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원양항해가 가능한 배를 모두 폐기처분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서양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에도 막부에서 내세운 쇄국정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쇄국정책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에도 막부가 쇄국정책을 실시한 이유는 두 가지, 바로 번의 세력 억제와 천주교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전국시대 지방 영주들이 해외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대 세력을 이룩해왔던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지방의 여러 번들이 해외무역을 통해 부유해져 중앙에 대항할만한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사농공상의 사회적 신분체계를 교란시키는 천주교의 세가 확대되는 것 또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러한 정책적 고려가 쇄국정책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기간 중에도 막부는 규슈의 네덜란드 상관은 그대로 유지시켰다. 비록 네덜란드인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도, 일본인이 네덜란드 상관으로 들어가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시키긴 했지만, 막부는 이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 해외무역을 실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서 서양세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특히나 이들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서 서양의 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이 수입되어, 소위 난학(蘭學)이라 불리는 신학문 풍조를 불러오기도 했다.

  메이지 유신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메이지 유신이라는 사건은 쇄국정책 폐지로 막부의 권위에 금이 가게 된 것을 계기로 막부의 권력을 타도하기 위해 사쓰마, 조슈 등의 번이 획책한 정변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실제로 그런 면이 강하다. 막부 측에서 서양과의 교류를 주장한 것에 반해 사쓰마, 조슈 세력이 되레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주장했다는 것을 통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메이지 유신이 일본 사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바꿔놓은 대사건이었는가 하는 것에도 의문의 여지는 있다. 메이지 유신은 분명히 서구의 정치제도 등을 수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 수용 방법은 지극히 일본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으로, 일반적인 헌법과는 달리 이 시기의 헌법, 소위 대 일본제국 헌법은 흠정헌법, 즉 천황이 제정하여 내려준 헌법의 형식이었다. 그 때문에 대 일본제국 헌법에는 일본의 주권이 국민이 아닌 천황에게 있으며, 내각은 국회가 아닌 천황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신분제 폐지나 중앙집권화 등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급진적으로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신분제를 폐지하고 번을 폐지하면서 메이지 정부는 과거 무사계급이었거나 번주(藩主)였던 이들에게 그들이 지행(知行)으로 두고 있었던 토지의 연공에 상응하는 돈을 지급했으며, 번주들을 새로 설치된 현의 지사로 그대로 임명하였다. 즉, 과거 지배층이었던 이들 대부분이 권력을 그대로 유지했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 문화를 이식하려는 시도도 대개 제대로 성공하질 못했다. 메이지 정부에서는 스모 등과 같이 에도시대 이후로 쭉 내려오던 여러 전통적인 문화를 없애려고 했지만, 민간의 반발로 인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매춘을 비롯한 성문화에 대해서도 서구적인 잣대를 들이대 제제를 가하려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리고 말았다. 스모가 지금까지 일본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고, 일본의 성문화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열심히 향유하고 있는 바다.

  메이지 유신이 아무 의미 없는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본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처한 나라가 어딘가에 있었다 해도, 일본과 똑같이 변했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고,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어났던 변화가 지금의 일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면서 특정한 계기 하나에 집중해, 그 계기를 이룩했는가, 이룩하지 못했는가를 가지고 당대인을 포폄하는 편협한 시선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시선이 역사에 대한 무의미한 가정을 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환독이나 식민사관과 같은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다.

p.s 비슷한 관점에서, 나는 한국적 라이트노벨이니 한국적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선 문화사적인 맥락 속에서의 '일본적' 라이트노벨이나 '일본적'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by RLamiel | 2009/02/03 02:11 | 기억할 것들은 서가에 두고 | 트랙백 | 덧글(6)
2009년 01월 15일
도서 카테고리 이야기

1. 미얄의 추천과 도서 카테고리

모 학교 도서관에 도대체 누가 신청했는지는 몰라도 미얄의 추천이 들어왔다.
이미 전권을 다 읽어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봐 주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해서 도서관에 들렀다.
검색대에서 몇 권까지 들어왔는지 쳐 봤지만, 1권부터 4권까지.
마침 대출 가능 권수도 딱 그 정도였는지라 곧바로 책을 찾으러 떠났다.
어차피 돌아다니면서 다른 책도 몇 권 빌릴 생각이었던지라 책 위치는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서관 하루 이틀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한국소설 코너가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없었다. 한국소설 코너를 거꾸로 뒤집어놓고 털어봐도 없었다.
결국 검색대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는데,
그게......

......일본소설로 분류되어있었다.

실수일 수도 있고, 카테고리 분류한 분이 이쪽 방면에 무지하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좀 그랬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신히 미얄의 추천을 찾아서 1, 2, 3권을 수거했는데, 4권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혹시 대출된건가 싶어서 검색대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1, 2, 3, 4권 모두 멀쩡하게 대출 가능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1, 2권은 두 권씩 있는데 3, 4권은 각각 한 권씩밖에 없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 살때는 똑같은 책을 반드시 두 권씩 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석연찮았다.
그래서 확인해봤더니......

......3권을 4권이라고 분류해버린 것이었다.

물론 신고해서 정정해놓긴 했는데, 뭐, 그런 것이었다.

2. X소소설과 도서 카테고리

히가시노 케이코가 지은 X소소설 시리즈 중 흑소소설을 꽤 재미있게 읽었기에,
흑소소설이랑 세트메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X소소설 두 권(독소소설, 괴소소설)도 빌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기도 하고, 일종의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지라
이번에도 검색대에서 찾아보지 않고 곧바로 흑소소설이 꽂혀있던 곳으로 갔다.
근데 없었다.
혹시나 누가 빌려갔나 싶어서 확인해 보았더니......

전부 다 카테고리가 다르게 분류되어서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다.
흑소소설이 첫번째 서가에 있는데 독소소설은 여섯번째 서가에 있고,
괴소소설은 영 좋지 않은 곳에 꽂혀있었던 것이다.

3. 손자병법과 도서 카테고리

어느 분이 도서관 아르바이트생에게 손자병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르바이트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좀 어색하게 컴퓨터를 두드려대더니만,
오른쪽으로 쭉 가면 꽂혀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분이 다시 도서관 아르바이트생에게 왔다.
아무리 찾아도 손자병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도서관 아르바이트생은 다시 한번 도서관 컴퓨터를 두드리더니만, 틀림없이 거기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없던 책이 다시 생길리가 없고, 다시 찾으러 가 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그 분은 군사학 과제를 해야 된다고 펄펄 뛰고, 아르바이트생은 자기가 직접 찾아볼 생각은 못 하고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군사학 관련 도서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가야 있는데, 왜 오른쪽이라고 했는지 이상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야기를 해 보았더니, 그 아르바이트생이 펄펄 뛰면서 XXX서가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가 봤더니, 거기 있었던 건......

......정비석의 손자병법이었다.

by RLamiel | 2009/01/15 15:25 | 살아가고 또 울고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2008년 12월 01일
교과서 문제에 관하여
  교과서는 절대로 교과서의 내용을 제공하는 학문 분야에서 연구한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에는 내용학 영역 중에서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선정'하여 '배열'하게 된다. 이러한 '선정'과 '배열'의 원칙을 담은 것이 바로 교육과정이고, 모든 교과서는 이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과학 계통 과목의 교과서나 외국어 계열 과목의 교과서는 사실 위주이기 때문에 기능의 숙련 수준에 따라 배열되지만, 인문계통 과목은 필자의 가치관에 따라 배열된다. 이 가치관이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와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학문적인 관점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교과서 필자들은 가능한 한 이런 가치관 문제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가능한 한 명확한 사실만을 수록하고 싶어하지만,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당장 역사 밸리에서 조영수호조약 가지고 치고 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 아니겠는가.

  이처럼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여러가지 교과서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 바로 검정교과서 제도이다. 즉, 교과서가 교육과정에 기초하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필자가 자유롭게 서술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교과서들 중 하나를 교사가 선택(학교가 선택해 줄 수도 있겠지만)해서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선택된 교과서와 선택되지 않은 교과서가 갈리게 된다. 말하자면 자유경쟁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서 확정된 교과서라고 해서 다음 교육과정이 만들어질 때까지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편제가 아닌 세부적인 수정 - 예컨대 발문의 형태나 사실관계 오류에 대한 정정 - 은 매해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지급되기 전 일정 기간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학계의 연구 동향이나 교과서를 사용했던 교사 및 학생들의 투고 등이 교과서 필자들의 판단에 의해 선택적으로 반영된다. 정부 각부 부처의 요구사항도 마찬가지로 선택적으로 반영된다.

  현 정부에서 벌이고 있는 교과서 수정 요구가 지니는 문제점은, 그 수정 내용이 어떠한가와 관계없이 위와 같은 '교과서 편찬 과정'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사실 교과부에서 요구한 수정안의 내용 자체는 앞에서 말했던 '일정 기간' 이루어지는 수정 요구에서 나올 법한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수정안을 '공고'해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교과서의 편제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결코 사실관계 여부가 될 수가 없다. 조영수호조약이 1884년이어야 하는데 1883년으로 되어있다고 해서 하는 요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정도 문제라면 다음 정정기간에 제안을 해도 될 문제다. 교과부에서 수정하라고 하는 내용도 다음 정정기간에 제안해도 충분한 문제이다. 즉, 정상적으로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 내용이 잘못되어있기 때문에 수정을 요구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정부에서 말하는 '좌편향' 운운은 아주 명백한 방향성을 지닌다.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는 것은 검정교과서 체제에서 필자의 자유로 보장해준 가치관의 문제이다. 앞서 말했던 바 그대로 가치관은 교과내용에 대한 필자의 '선정'과 '배열', 다시 말해서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다시 말해 정부는 교과서의 내용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필자들의 '선택권'에 영향을 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들의 선택권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장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교과서 편찬 과정 자체를 완전히 뒤엎고, 수십년 전의 국정교과서 체제로 되돌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과서를 선택하는 교사의 선택의 폭을 줄여버리고, 교과서를 선택할 때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는 곧 학생의 가치관이 하나로 완전히 묶여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접적일 수도 있고, 비약일 수도 있지만 교사가 학생들 개개의 특성을 고려한 방법으로 학습목표에 도달하도록 만든다는, 현대의 교육방법론(이건 특정 교과의 교육방법이 아니라 교육학계의 의견이다)에도 완전히 역행하게 만들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계획경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떠한 학설이 교과서에 등재된다는 것은 그 학설이 교과서의 내용이 되는 학문영역에서 가능성 있는 설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교과서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은, 학계의 자유로운 연구활동에까지도 제약을 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가치관의 자유롭고 납득할만한 표현이 중요한 인문학계로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다. 비단 역사과에만 해당되는 문제도 아니다. 이번 역사교과서 수정이 정부에서 의도한 바대로 진행된다면,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 다른 인문계열 과목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예전부터 경제나 정치와 같은 일반사회 계통 과목 교과서에 대해 전경련 등의 단체에서 여러차례 수정요구를 해 왔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중립적인 교과서를 만들면 되지 않는가' '평가는 학생에게 맡기면 되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앞서 전제했듯이 교과서는 '선정'과 '배열'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특정 토픽에 대한 가치관이 드러나고, 평가가 이루어진다. 천주교 탄압을 이야기하면서 황사영 백서사건을 설명하느냐 설명하지 않느냐가 곧 가치관이다. 구한말 명성황후에 대해서 매천야록을 인용해 이야기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곧 평가가 된다. 다른 인문계열 과목들도 마찬가지다. 문학 교과서에서 소설 부분에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수록하느냐 이문열의 '금시조'를 수록하느냐, 시 부분에 신동엽의 시를 수록하느냐 서정주의 시를 수록하느냐가 곧 가치관이 된다. 어찌보면 인문계열 과목은 가치관 그 자체가 교육내용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교과서에는 가치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교과서에 특정한 가치관이 드러난다는 것을 이유로 교과서 편찬 과정을 깨가면서, 검정교과서 체제를 망가뜨려가면서 수정요구 차원을 넘어선 강요를 한다는 것은 수정요구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문에 특정한 가치관이 드러난다고 해서 신문기사에 빨간줄을 그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일 교과서에 사실관계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내용이 들어있다면, 분명히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치관을 걸고 넘어지면서 교과서를 수정하려 드는 것, 그리고 정당한 교과서 수정 절차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과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들기 전에 수정 요구 자체에 대해서 조금은 넓은 안목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번해 만든 교과서를 천년만년 쓸 것도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by RLamiel | 2008/12/01 03:54 | 세상을 읽고 | 트랙백 | 덧글(4)
2008년 11월 02일
중학교 사회 1, 2학년 문제[10.31 출제]
1031-s01.hwp
1031-s02.hwp

저번에 정기고사용으로 출제했던 문제.
그닥 볼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바빠서 일용할 포스팅거리도 부족한 마당이니 보관용도 겸해서 올려놓도록 하자.
by RLamiel | 2008/11/02 19:08 | 기억할 것들은 서가에 두고 | 트랙백 | 덧글(1)
2008년 10월 26일
근래 재독한 '간식'들의 맛
1. 문학소녀 시리즈

 큭, 흠............

2.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풋

3. KOG

  꿻
by RLamiel | 2008/10/26 14:32 | 글을 읽고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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